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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일하는가

글을 쓰게 된 계기

얼마 전 51unconference이라는 행사에 스피커로 참여하게 되었다. 해외 취업에 대한 여러 스피커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컨퍼런스였고, 이 컨퍼런스를 홍보하기 위해 블라인드에 이벤트 게시물이 하나 올라갔다. 다양한 댓글 중 눈에 들어오는 댓글이 하나 있었으니:

블라인드 댓글

솔직히 나는 이 댓글에서 약간 비아냥거리는 느낌을 받았지만 - 내가 예민한 것일 수도 있겠다 - 내가 읽어낸 그 느낌이 만약 맞았다면, 이 댓글 작성자가 잘못된 선입견에서 저런 댓글을 쓸 수도 있었겠다는데 생각이 미쳐서 “왜 우수한 직원들이 굳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그러한 선입견을 불식시켜보려고 한다.

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가?

“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왜일까?

“재미있는 동료들, 미지에의 도전, 자유로운 업무 환경,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같은 레퍼토리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틀린 답은 아니고, 다른 조건은 전혀 보지 않고 힙한 분위기에 이끌려 스타트업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좀 더 실질적인 답은 “전반적으로 볼 때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이 비교적 괜찮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FANG같은 공룡 테크기업과 비교해도 말이다. 아니 뭐라고? 한줌짜리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과 구글에서 일하는 것이 별 차이가 없다고? 그렇다.

물론 이 이야기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는데, 자유로운 업무 환경이나 독특하고 놀라운 기업 문화, 공짜 점심, 무제한 휴가 등의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지겹게까지 느껴질 것이다. 여기서는 이런 이야기들 대신 좀 더 실용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스타트업 직원의 커리어와 급여에 대해 지적한 글(https://80000hours.org/2015/10/startup-salaries-and-equity-compensation/)의 일부를 발췌해 본다 (거의 5년 전 글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겠지만, 지금도 별 차이는 없다):

Conclusion: What are startups good for?

I tell my prospective employees that compensation is approximately the same on expectation between big companies and small: a senior developer at Google will probably make about as much money as a senior developer at a startup. The difference is that startups enable you to move through the ranks much more rapidly: a skillful developer will move from "entry-level" to "senior" more rapidly at (some) startups than Google.

결론: 스타트업이 유리한 점은 무엇인가?

나는 직원 후보에게 급여에 대한 기대치는 큰 회사나 작은 회사나 대략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구글의 시니어 개발자가 스타트업의 시니어 개발자와 비슷한 액수를 벌어들일거라는 이야기이다. 다만 구글과 비교했을 때의 차이점은, (일부) 스타트업 회사에서는 능력있는 개발자가 보다 빠르게 승진할 기회가 있다.

스타트업을 직장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힙한 문화와 빛나는 비전과 일확천금을 좇아서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것만은 아니고, 현실적인 급여 수준과 승진의 기회를 따져보고 내린 선택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스타트업 직원의 급여 수준

위 단락의 인용문을 읽으며 혹시 뭐? 구글하고 스타트업 시니어 개발자의 급여 수준이 비슷하다고? 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저 주장에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회사가 어느 단계의 스타트업인지 (엔젤 투자, 시드, 시리즈 X, 피인수, IPO..), 그 밖의 여러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서는 급여에 대해 따져보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는 - 쉽게 유추 가능하겠지만 - 이른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일수록 연봉보다는 스톡 옵션의 비중이 높은 경향이 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회사 자체가 망할 확률도 높다)

어쨌든, 유니콘 -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받는 - 수준에 도달한 기업들이 급여를 어떻게 주는지 직접 확인해보면, 급여 수준 자체는 별 차이가 없음을 볼 수 있다.

Levels.fyi, Google  Levels.fyi, Snowflake

다시, 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가?

나 또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고, 일개 직원 입장에서 이 질문에 답해보자면, 사실 질문 자체에 큰 의미가 없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내 주변을 둘러봐도 FANG에서 이직해 온 직원이 꽤 많고 (지금 문득 떠올려보니 내가 속한 팀만 해도 페북, 넷플릭스, 구글, MS에서 이직한 직원이 다수. 애플 빼고는 다 있는 것 같다), 숫자 계산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아무런 계산 없이 꿈과 비전만을 좇아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해 올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위에 적은 답을 반복해야 할 것 같다: “전반적으로 볼 때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이 비교적 괜찮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일하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나 급여와 같은 조건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회사의 비전과 같은 다른 조건을 보고 회사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 빠진 부분

내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통계적인 데이터나 연구가 있었다면 그걸 소개하는게 더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있다.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직원들의 선호도를 다룬 연구는 몇몇 있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 경력이 있는 직원의 급여와 승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데이터는 (있을 법 한데)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약간은 뜬금없지만 덴마크에서 이루어진 연구 하나를 소개해 본다:

위 논문에서는 스타트업 직원이 대기업 직원에 비해 10년 동안 약 17% 적은 수입을 얻는다고 정리하고 있다. 논문 내에서는 스타트업 → 대기업, 대기업 →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을 경우 수입의 변화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